스틸맨 (steel-manning)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전에, 그가 실제로 내놓은 것보다 더 강하고 빈틈없는 형태로 다시 세워 놓고 그 가장 단단한 판본을 상대하는 비판의 자세. 허수아비를 세워 때리는 '스트로맨'의 정반대로, 가장 튼튼한 버전을 이겨야 비로소 그 주장을 이긴 것이라는 생각이 핵심이다.
너, 누군가의 글에 반박문을 쓰려고 펜을 든 적이 있을 거다. 상대의 주장에서 제일 허술한 문장 하나를 골라, 거기 매달려 통쾌하게 무너뜨린다. 읽는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그런데 정작 반박당한 그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적 없는데.' 너는 그가 흘린 가장 약한 한 조각을 주워 짚으로 사람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짚 인형을 두들겨 팬 거다. 인형은 쓰러졌지만 그의 진짜 생각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다. 오늘 이야기는, 이 헛스윙을 정반대로 뒤집어 아예 비판의 규칙으로 만들어 버린 한 사람에 관한 거다. 흥미로운 건, 같은 사람이 컴퓨터 안에서도 똑같은 깨달음을 한 번 더 증명했다는 점이지.
먼저 말의 내력부터 보자. '짚으로 만든 사람', 그러니까 스트로맨이라는 표현은 대략 1800년대 중반부터 글에 등장한다. 진짜 상대가 아니라 만만하게 세워 둔 가짜를 때린다는 비아냥이었다. 그런데 그 반대편, '강철로 만든 사람'이라는 말은 놀랍도록 늦게 태어났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토론을 글로 주고받기 시작한 21세기 들어서, 대략 2010년대 초에야 누군가 스트로맨의 짝꿍으로 이 단어를 빚어냈다. 전해지기로는 엘리 두라도라는 경제학자가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터넷에서 자라난 말이 늘 그렇듯 누가 처음인지는 깔끔하게 못 박기 어렵다. 이름은 새것이어도, 그 안에 담긴 자세는 훨씬 오래전에 한 사람이 또박또박 규칙으로 적어 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아나톨 라포포트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수리심리학자이자 게임이론가인데, 갈등과 토론을 평생의 주제로 삼았다. 그가 1960년에 펴낸 책에서 정직한 비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네 단계로 적어 두었다. 이 규칙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한참 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2013년 자기 책에서 이걸 '생각의 도구' 중 하나로 끌어내 소개하면서다. 데닛이 옮긴 그 첫 단계가 압권이다. 상대의 입장을 어찌나 또렷하고 생생하고 공정하게 다시 말해 주어야 하는지, 상대가 듣고서 '고맙군요, 나도 그렇게 표현할 걸 그랬어요' 하고 감탄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 그러고 나서 상대 주장에서 네가 동의하는 점을 짚고, 그에게서 배운 것을 인정하라. 이 세 관문을 다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단 한마디라도 반박을 꺼낼 자격이 주어진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그냥 짚 인형 두들기기로 굴러떨어진다는 거다.
왜 이런 손해 보는 길을 자청하나 싶을 거다. 약점만 골라 치면 이기기 쉬운데, 일부러 상대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 놓고 싸우라니. 셈을 해 보면 답이 나온다. 약한 판본을 이겨 봐야 상대의 진짜 생각은 살아남아 너를 두고두고 괴롭힌다. 반대로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판본까지 무너뜨리면, 그제야 그 주장은 끝난다. 게다가 묘한 일이 따라온다. 상대를 강철로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너는 그의 논리를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가끔은 거기서 네가 틀렸음을 발견한다. 그러면 진 게 아니라 더 옳은 생각으로 갈아탄 거다. 어느 쪽으로 굴러도, 강철을 세운 쪽이 남는 장사다.
라포포트가 이 자세를 머리로만 알았던 게 아니라는 증거가, 뜻밖에도 컴퓨터 안에 남아 있다. 1980년,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죄수의 딜레마'를 컴퓨터끼리 반복해 겨루게 하는 대회를 열고 세계의 게임이론가들에게 전략을 받았다. 서로 협력할지 배신할지를 200번 되풀이하는 싸움이었다. 온갖 영리하고 교활한 전략이 쏟아졌는데, 우승은 라포포트가 보낸 단 네 줄짜리 프로그램에 돌아갔다. 이름이 '팃포탯', 받은 대로 되갚기다. 첫판은 무조건 협력하고, 그다음부터는 상대가 직전에 한 그대로 따라 한다.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 배신하면 딱 한 번 되갚고 다시 손을 내민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모두가 1차 대회의 결과를 손에 쥐고 약점을 노려 다시 도전한 2차 대회에서도, 라포포트는 똑같은 팃포탯을 다시 내고 또 우승했다. 가장 단순한 전략이 가장 똑똑한 전략들을 이긴 것이다. 그가 토론에서 말한 것과 정확히 같은 교훈이 코드로 증명된 셈이다. 상대를 먼저 좋게 대접하고 그가 가진 가장 강한 수를 정면으로 받아내는 쪽이, 길게 보면 이긴다는 것.
그 뒤로 이 발상은 기계의 세계에서 계속 살아 있다. 인공지능에게 더 옳은 판단을 가르치려고, 서로 반대 입장을 맡은 두 모델이 각자 상대의 가장 강한 논거를 끌어내 맞붙게 하고 사람이 그 토론을 심판하게 하는 방식이 연구되는데, 거기 깔린 전제가 바로 이거다. 약한 반론을 이겨선 안 되고, 가능한 한 가장 센 반론끼리 부딪혀야 진짜 옳은 쪽이 드러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정직하게 비판하려고 세운 오래된 규칙이, 기계가 기계를 검증하는 자리로 그대로 옮겨 앉은 셈이다.
그러니 너가 누군가의 기획을, 주장을, 제안을 깎아내리고 싶어지는 순간을 만나거든 — 그 충동을 잠깐 붙들고 이렇게 하라. 먼저 상대의 말을 그가 한 것보다 더 강하게 다시 세워라. 상대가 '나보다 내 생각을 잘 정리했네' 할 만큼. 동의할 곳을 짚고, 배운 것을 인정하고, 그러고 나서야 칼을 들어라. 거기서 이기면 진짜로 이긴 거고, 거기서 막히면 더 나은 생각을 공짜로 얻은 거다. 짚 인형은 아무리 때려도 쓰러진 채로 너를 비웃는다. 강철을 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