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비판·검증

전제 의심 (questioning assumptions)

어떤 주장이나 결론이 딛고 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밑바닥 가정을 일부러 끄집어내어 정말 그러한지 흔들어 보는 사고법. 답이 안 풀릴 때 답을 더 파는 대신 문제가 깔고 앉은 출발점을 의심하는 데 핵심이 있으며, '이게 정말 참이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작동한다.

너, 한 장의 종이 위에 가장 또렷하게 적힌 거짓말이 있다고 해보자. 누구나 매일 보면서도 거짓인 줄 모르는 거짓말. 이천 년이 넘도록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그 한 줄을 노려보며 '이건 너무 뻔해서 굳이 적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진리인데, 어쩐지 거슬린다'고만 중얼거렸다. 아무도 그 줄이 틀렸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오늘 이야기는, 그 한 줄을 끝내 의심한 몇 사람과, 의심의 문턱까지 갔다가 무서워서 도망친 한 사람에 관한 거다.

문제의 종이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클리드가 쓴 기하학 교과서다. 그는 따질 것도 없이 받아들이자고 다섯 개의 약속을 맨 앞에 깔았다. 앞의 네 개는 짧고 깔끔하다. 점 두 개를 이으면 선이 된다, 뭐 이런 식이지. 그런데 다섯 번째만 유독 길고 장황하고 군더더기 같았다. 거칠게 풀면 이런 뜻이다 — 한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영영 만나지 않는 평행선은 오직 하나뿐이다. 보기엔 맞는 말 같다. 종이 위에 그어 보면 정말 그래 보인다. 그래서 그 뒤로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가 똑같은 일에 매달렸다. 이 다섯째는 너무 못생겼으니 앞의 깔끔한 네 개로부터 '증명'해 낼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이 군더더기를 약속 목록에서 지울 수 있다 — 그게 그들의 공통된 꿈이었다. 다들 그 다섯째가 '참'이라는 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더 우아하게 떠받치고 싶었을 뿐이다.

여기서 이야기의 가장 아픈 인물이 등장한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한 예수회 수사, 조반니 사케리. 그는 1733년, 죽기 직전에 영리한 작전을 짠다. 다섯째가 거짓이라고 일부러 가정해 보자, 그러면 분명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줄줄이 튀어나올 테고, 그 모순으로 다섯째가 참일 수밖에 없음을 거꾸로 증명하자. 그는 이 가정을 붙들고 정리를 하나하나 끌어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순이 안 나오는 거다. 평행선이 여럿일 수도 있다는 그 '틀린' 세계에서, 기괴하지만 멀쩡하게 아귀가 맞는 새로운 기하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사케리는 인류 최초로 그 신대륙의 해안에 발을 디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문턱에서 그는 무너진다. 자기가 끌어낸 결과가 '직관에 너무도 어긋나고 혐오스럽다'고 적고는, 억지로 어딘가에서 모순을 봤다고 우기며 책을 덮어 버린다. 유클리드는 옳아야 한다는 그 밑바닥 믿음을, 그는 끝내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신대륙을 밟고도 여긴 있을 수 없는 땅이라며 눈을 감아 버린 셈이다.

그 마지막 한 걸음, 곧 '유클리드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금지된 가정을 진짜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 나온다. 그것도 서로 모르는 채 세 군데서 거의 동시에. 독일의 가우스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는데, 평행선 가정을 버려도 모순 없는 기하학이 선다는 걸 일찌감치 혼자 알아냈으면서도 발표하지 않았다. 학계의 비웃음 — 그는 '둔재들의 아우성'을 두려워한다고 편지에 썼다 — 이 무서웠던 거다. 진실을 봤으되 입을 닫은 또 한 명의 사케리였던 셈이다. 입을 연 건 변방의 두 젊은이였다. 러시아 카잔의 니콜라이 로바쳅스키가 1829년 무렵 처음으로 이 새 기하학을 인쇄해 세상에 내놓았고, 헝가리의 청년 야노시 보요이가 1832년 독립적으로 같은 세계를 발표했다. 보요이의 아버지는 평생 그 평행선 문제에 인생을 허비했던 수학자라, 아들에게 그 늪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빌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무에서, 새롭고 다른 우주를 하나 창조해 냈노라고. 사람들은 훗날 이 사고법을, 당연시되던 전제를 끄집어내 흔드는 이 행위를 가리켜 가정을 의심한다고 부르게 됐다.

이 이야기가 단지 수학자들의 집안싸움으로 끝났다면 너에게 들려줄 이유가 없다. 진짜 반전은 그다음이다. 로바쳅스키와 보요이가 연 그 '있을 수 없는' 기하학은, 알고 보니 휘어진 면 위의 진짜 세계를 그리는 언어였다. 독일의 리만이 이걸 더 밀어붙여 공간이 휠 수 있는 일반 이론으로 키웠고, 그로부터 또 반세기 뒤 아인슈타인이 중력을 설명하려다 손을 뻗은 도구가 바로 그 휜 공간의 기하학이었다. 우리가 사는 우주의 공간 자체가 별과 질량 곁에서 휘어 있다는 그 그림 말이다. 여기서 네가 똑똑히 봐야 할 대목이 있다. 누군가 '평행선은 하나뿐'이라는 작은 가정 하나를 의심한 그 행위는, 단지 기하학 교과서의 한 줄을 고친 게 아니었다. '공간이란 본래 평평하고 곧은 것'이라는, 인류가 수천 년간 깔고 앉아 의심조차 안 했던 가장 윗단추를 통째로 다시 끼우게 만들었다. 밑바닥 가정 하나를 흔들었더니, 그 위에 얹혀 있던 세계관 전체가 갈려 버린 것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문제 앞에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안 풀릴 때, 답을 더 깊이 파고들기 전에 한 발 물러서서 이렇게 물어라. 이 문제가 깔고 앉은, 나도 모르게 '당연하지'라며 넘어간 출발점이 무엇인가. 그게 정말 참이어야만 하는가. 만약 그게 거짓이라면 어떤 세계가 열리는가. 사케리처럼 신대륙을 밟고도 '여긴 있을 수 없다'며 눈 감지 마라. 가장 또렷하게 적힌 당연한 한 줄, 아무도 손대지 않는 바로 그 줄을 의심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