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씽킹 (design thinking)
사용자가 실제로 겪는 문제에서 출발해 해법을 찾아가는 문제 해결 방식이다. 공감으로 사용자를 이해하고,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펼치고,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하며 고쳐 나간다. 책상 위 논리가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고 직접 만들어 보며 배우는 태도에 가깝다.
너, 종합병원 소아과 복도에 서 있다고 해보자. 다섯 살짜리 아이가 MRI 검사실 문 앞에서 자지러지게 운다. 거대한 흰 기계가 윙윙대는 어두운 통 속으로 혼자 들어가 십오 분을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니, 어른도 무서운데 아이는 오죽할까. 실제로 어린 환자의 상당수가 겁에 질려 진정제를 맞아야만 했다. 기계를 만든 엔지니어가 있었다. 더그 디츠라는 사람인데, 자기가 설계한 최신 MRI가 병원에 막 설치된 걸 보러 갔다가 바로 이 장면을 목격한다.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기계였다. 해상도도 속도도 최고였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 들어갈 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가 평생 자랑스러워한 '잘 만든 기계'가 누군가에겐 공포의 동굴이었던 거다.
여기서 보통의 공학자라면 기계를 더 조용하게, 더 빠르게 개선하려 들었을 거다. 디츠는 다른 데를 봤다. 문제는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이었다. 그는 스탠퍼드 디스쿨에서 한 주짜리 워크숍을 듣고 와서, 엔지니어의 눈을 잠시 끄고 아이의 눈으로 그 통을 다시 봤다. 유치원 교사에게 묻고, 아동 박물관을 찾아가고, 무서워하는 꼬마들을 관찰했다. 그렇게 나온 해법은 기계를 바꾸는 게 아니었다. 검사실 전체를 해적선 모험으로 꾸미는 거였다. 기계는 배가 되고, 통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건 '해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죽이는 일'이 된다. 검사가 끝나면 간호사가 보물 상자에서 작은 장난감을 꺼내 준다. 결과는 거짓말 같았다. 진정제가 필요한 아이의 비율이 크게 줄었고, 어떤 아이는 검사가 끝나자 엄마한테 내일 또 와도 되냐고 물었다.
디츠가 한 일에 이름이 있다. 디자인 씽킹이다. 사용자에게 푹 빠져 들어가 공감하고, 거기서 진짜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해법을 마구 발상하고, 거칠게라도 시제품을 만들어, 사용자에게 시험해 고쳐 가는 흐름. 이 사고법의 뿌리는 1960년대, 디자인을 장인의 손재주가 아니라 가르치고 따질 수 있는 '방법'으로 보려던 움직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버트 사이먼은 1969년에 디자인을 '지금 상태를 더 나은 상태로 바꾸는 행위'라 규정했고, 비슷한 시기에 로버트 매킴 같은 사람이 스탠퍼드에서 시각적 사고를 가르쳤다. 그 흐름이 1991년 실리콘밸리의 디자인 회사 IDEO로 모였다. 창업자 데이비드 켈리가 이 방식을 회사의 일하는 법으로 벼려 냈고, 마침 1999년 ABC 방송이 IDEO 팀에게 닷새 만에 쇼핑카트를 새로 설계해 보라는 장면을 통째로 내보내면서 세상이 이 방법을 눈으로 보게 됐다. 켈리는 2005년 스탠퍼드에 디스쿨을 세워 이걸 누구나 배우는 절차로 풀어 놓았다. 엔지니어든 의사든 공무원이든, 공감하고 정의하고 발상하고 시제품 만들고 시험하는 다섯 걸음을 밟게 한 것이다.
이 방법이 무서운 건, 디지털 제품을 만들 때 그냥 한 단계가 아니라 일하는 틀의 윗단추가 됐다는 점이다. 예전 소프트웨어는 기획서를 완벽히 짜고 다 만든 다음 출시했다. 디자인 씽킹과 그 사촌인 애자일이 만나면서, 쓸 만한 최소한의 시제품을 빨리 내놓고 진짜 사용자의 반응으로 고쳐 가는 식으로 순서 자체가 뒤집혔다. 우리가 매일 쓰는 앱의 화면이 끊임없이 바뀌는 건 누군가 책상에서 옳은 답을 정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용자에게 작은 시제품을 시험하며 배운 결과다.
그러니 너가 '좋은 걸 만들었는데 왜 안 쓰지'라는 벽에 부딪히거든, 네 설계도를 더 다듬으려 들지 말고 먼저 그걸 쓸 사람 옆에 가 앉아라. 그가 어디서 우는지를 보고, 문제를 그의 말로 다시 적고,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거친 시제품을 손에 쥐여 줘 봐라. 답은 네 머릿속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반응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