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형량 (balancing test)
충돌하는 둘 이상의 가치나 권리, 이익을 한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견주고, 더 무거운 쪽으로 결론을 기울이는 판단 방법.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미리 정해 두지 않고, 사안마다 양쪽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구체적으로 따져 비교하는 데 핵심이 있다. 본래 법정에서 권리 다툼을 가리려고 다듬어진 절차이지만, 가치가 부딪치는 모든 결정에 쓰인다.
너, 한밤중에 아파트 위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고 해보자. 올라가서 따질까 말까. 한쪽엔 조용히 잘 권리가 있고, 다른 쪽엔 자기 집에서 자기 좋을 대로 살 권리가 있다. 둘 다 옳다. 그런데 둘이 같은 시각, 같은 건물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럴 때 '누가 무조건 옳다'는 답은 없다. 새벽 두 시냐 저녁 일곱 시냐, 매일이냐 어쩌다 한 번이냐, 방음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저울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기운다. 너는 지금 머릿속에서 두 권리를 한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저울질을 정식 절차로 만들어 낸 사람들에 관한 거다. 그리고 그 무대는 다름 아닌 법정이었다.
원래 법이라는 건 저울질을 싫어했다. 19세기까지 미국 법조계를 지배한 생각은 단순했다. 법에는 정해진 원칙이 있고, 사실을 그 원칙에 끼워 맞추면 답이 기계처럼 나온다는 것. 권리는 절대적인 것이라, 한번 네 권리라고 인정되면 그걸로 끝이지 다른 것과 무게를 견줄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20세기 문턱에서 이 기계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가 빽빽해지자, 한 사람의 재산권과 다른 사람의 안전, 기업의 계약 자유와 노동자의 건강이 매일 충돌했다. 어느 하나를 절대적이라 못 박는 순간 다른 하나가 짓밟혔다. 여기서 로스코 파운드라는 법학자가 나섰다. 20세기 초, 그는 법을 하늘에서 내려온 고정된 공식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부딪치는 이익들을 조정하는 살아 있는 연장으로 보자고 했다. 그가 내건 말이 '이익의 형량', 곧 충돌하는 이익들을 저울에 달아 비교하라는 것이었다. 법의 임무는 누가 절대적으로 옳은지 선언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보호하려는 여러 이익을 최대한 적게 충돌시키며 함께 살려 내는 일이라고 그는 봤다.
이 발상은 곧 법정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다. 특히 표현의 자유 같은 영역에서 그랬다. 말할 자유는 신성하지만, 그 자유가 남의 명예나 공공의 안전과 부딪칠 때 '무조건 자유가 이긴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판사들은 사안마다 저울을 꺼냈다. 이 말을 막아서 지키려는 공익은 얼마나 무거운가, 그 말을 막음으로써 잃는 자유는 얼마나 무거운가. 양쪽을 구체적으로 견줘 더 무거운 쪽으로 기울였다. 이 방식은 강력한 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저울에 무엇을 얼마로 달지는 결국 다는 사람 손에 달렸으니, 판사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결론 쪽으로 추를 슬쩍 더 얹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둘러싼 다툼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안 끝났다. 저울질은 정직한 도구이자, 언제든 기울일 수 있는 위험한 도구다.
이 추상적인 저울질이 거의 산수에 가깝게 또렷해진 순간이 있다. 1947년, 미국의 명판사 러니드 핸드가 맡은 사건은 시시했다. 뉴욕 항구에 매어 둔 바지선이 관리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줄이 풀려 떠내려가 가라앉았다. 누구 잘못인가. 핸드는 이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저울질을 거의 공식처럼 적어 냈다. 사고를 막는 데 드는 비용을 한쪽에, 사고가 날 확률과 그때 생길 손해의 크기를 곱한 값을 다른 쪽에 놓아라. 막는 비용이 예상 손해보다 가벼운데도 막지 않았다면, 그건 과실이다. 조심하는 값이 사고로 잃을 값보다 싼데 게으름을 피웠으니 책임을 져라. 권리니 도덕이니 하는 거창한 말 대신, 양쪽의 무게를 숫자로 견줘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 핸드의 공식은 지금도 과실을 따지는 자리에서 저울질의 가장 선명한 본보기로 인용된다. 막연하던 '무게를 단다'는 말이, 비용과 확률과 손해라는 잴 수 있는 항목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대서양 건너에서는 이 저울질이 더 정교한 틀로 자라났다. 2차 대전의 폐허 위에 새 헌법재판소를 세운 독일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때 함부로 못 하도록 '비례의 원칙'이라는 단계별 저울을 만들었다. 그 제한이 정당한 목적을 위한 것인지, 목적 달성에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 같은 목적을 이룰 더 약한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얻는 공익이 개인이 잃는 자유보다 무거운지를 차례로 따진다. 마지막 그 한 칸이 바로 좁은 의미의 이익형량이다. 이 독일식 저울은 워낙 잘 짜여서, 오늘날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헌법재판이 이 틀을 받아들여 쓴다. 충돌하는 가치를 다루는 인류의 솜씨가, 한 저울에서 네 칸짜리 정교한 저울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니 너가 두 가지 옳은 것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자리에 서거든 — 속도냐 안정이냐, 매출이냐 신뢰냐, 한 사람의 편의냐 모두의 안전이냐 — 한쪽을 미리 '무조건 옳다'고 정해 놓고 시작하지 마라. 대신 둘을 같은 저울에 올려라. 이쪽을 택해서 얻는 것과 잃는 것, 저쪽을 택해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핸드처럼 무게로 적어 견줘라. 그리고 더 무거운 쪽으로 기울이되, 네 손이 저울추를 슬쩍 더 얹고 있지는 않은지 끝까지 의심하라. 그게 백 년 동안 법정이 갈고닦은, 옳은 것들끼리 싸울 때 길을 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