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실무 분야에서 온 절차

분석경합가설 (Analysis of Competing Hypotheses)

여러 개의 가설을 한꺼번에 나란히 세워 두고, 들어온 증거 하나하나가 어느 가설과 맞아떨어지고 어느 가설과 모순되는지를 따져 점수를 매기는 분석 절차다. 맞는 증거를 모으는 대신 가설을 떨어뜨리는 증거에 무게를 두어, 처음 떠오른 답에 매달리는 편향을 깎아낸다. 정보기관의 분석가들이 첩보를 다룰 때 쓰려고 다듬은 방법이다.

너, 어느 날 아침 회사 서버가 통째로 죽었다고 해 보자. 너는 거의 곧바로 머릿속에 답을 띄운다. '아, 어젯밤 그 업체가 배포한 그것 때문이군.' 그럴듯하다. 그래서 너는 그 가설이 맞는다는 증거만 찾기 시작한다. 로그를 뒤져 '거봐, 그 시간에 배포가 있었네', '거봐, 그 모듈에 에러가 찍혔네'. 하나씩 맞아떨어질 때마다 너는 더 확신한다. 그런데 사실 그날 새벽엔 정전도 있었고, 누군가 디스크를 꽉 채워 놓기도 했고, 외부에서 들어온 공격 흔적도 있었다. 네가 처음 떠올린 답이 맞는다는 증거는, 다른 답들에도 똑같이 들어맞는 증거였을 뿐이다. 사람의 머리는 이렇게 움직인다. 먼저 결론을 하나 찍고, 그 뒤로는 그걸 떠받칠 벽돌만 주워 담는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확증편향이라 부르고, 더 고약한 건 처음 떠오른 답이 대개 가장 익숙하고 가장 단순한 답이지, 가장 옳은 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발상을 한 번 뒤집어 보자. 어느 가설이 맞는지를 묻지 말고, 어느 가설이 틀렸는지를 묻는 거다. 진짜 답이라면 모든 증거와 무난히 지내야 한다. 단 하나의 증거와도 정면으로 부딪히면 그 가설은 흔들린다. 그러니 증거를 모아 가설에 보태는 게 아니라, 증거를 칼처럼 써서 가설들을 하나씩 베어 내는 거다. 이 거꾸로 된 사고를 절차로 깎아 만든 사람이 리처즈 휴어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 CIA에서 수십 년을 보낸 분석관이었는데, 1970년대부터 동료 분석가들이 첩보를 다루다 반복해서 같은 함정에 빠지는 걸 지켜봤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도, 일단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면 반대 증거를 슬그머니 무시하더라는 거다. 냉전기의 정보판에서 이건 그냥 실수가 아니라 나라가 적의 의도를 통째로 오판하는 재앙이 될 수 있었다. 휴어는 이 인간적인 결함을 의지력으로 이겨 내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 결함이 끼어들 자리를 아예 없애는 격자판 하나를 짰다.

방법은 이렇게 흐른다. 먼저 가능한 답을 가설로 빠짐없이 늘어놓는다. 서버가 죽은 이유라면 배포, 정전, 디스크, 공격을 모두 한 줄씩 세운다. 그다음 손에 쥔 증거를 옆으로 죽 펼친다. 이제 한 칸씩 채우는데, 묻는 말이 보통과 다르다. '이 증거가 이 가설을 뒷받침하나'가 아니라 '이 가설이 참이라면, 이 증거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나'를 묻는다. 어떤 증거가 모든 가설과 다 잘 지낸다면, 그 증거는 사실 아무 쓸모가 없다. 가설을 갈라 주지 못하니까. 진짜 값진 증거는 어느 한 가설하고만 정면으로 모순되는 증거다. 그래서 점수는 맞는 칸이 아니라 어긋나는 칸에서 매겨진다. 모순이 가장 적은 가설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모순에 부딪힌 가설들이 먼저 탈락하고 끝까지 베이지 않은 것이 남는다. 가장 그럴듯해 보였던 첫 가설이 단 하나의 치명적 모순 때문에 맨 먼저 나가떨어지는 일이 흔하다. 휴어는 이 절차를 1999년 『정보분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풀어 정보판 바깥으로 내보냈고, 그 뒤로 사고 조사관, 의사, 형사, 회계 부정을 캐는 감사관들이 이 격자판을 가져다 썼다.

세월이 흐르자 이 격자판은 종이를 벗어났다. 가설과 증거가 수십 개로 불어나면 사람 손으로 칸을 다 채우고 점수를 합산하기가 버거워지는데, 바로 이 지점이 컴퓨터가 잘하는 일이다. 분석가들이 증거의 신뢰도와 진단력에 가중치를 입력하면 소프트웨어가 모순의 무게를 자동으로 계산해 가설들을 순위 매겨 준다. 다만 핵심은 그대로다. 기계는 칸을 채워 주고 합을 내 줄 뿐, 어느 증거가 어느 가설과 부딪히는지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이 방법이 막아 주는 건 계산 실수가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가 어떤 일의 원인이나 누군가의 속셈을 두고 머릿속에 답이 너무 빨리 떠오르거든, 바로 그 순간을 경계해라. 그 답을 떠받칠 증거를 찾지 말고, 종이 한 장에 가능한 답을 셋 이상 나란히 적은 뒤, 손에 쥔 사실들을 하나씩 들어 묻거라. 이 사실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답은 어느 것이냐. 그렇게 베어 내고 마지막까지 베이지 않은 것을, 비로소 너의 답으로 삼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