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메타·자기적용

글로 사고하기 (writing to think)

머릿속의 흐릿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고 자체를 명료하게 가다듬는 방법. 쓰기는 이미 완성된 생각을 받아 적는 일이 아니라, 쓰는 동안 비로소 생각이 형태를 갖추게 만드는 도구로 본다.

너, 누군가에게 머릿속에서는 분명 다 알고 있다고 느꼈던 걸 막상 설명하려다 말문이 막힌 적 있을 거다. 분명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입을 떼는 순간 그게 안개처럼 흩어진다. 더 답답한 건, 그 안개의 어디가 비었는지조차 안개 속에서는 안 보인다는 거다. 자, 그럴 때 종이 한 장과 펜을 들고 그 생각을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가 봐라. 그러면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세 번째 문장쯤에서 너는 멈칫한다. "어, 여기 이게 왜 이렇게 되지?" 머릿속에서는 매끄럽게 넘어갔던 그 자리에,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드러난다. 글이 그 구멍을 너 대신 찾아 준 거다.

이게 핵심이다. 우리는 보통 생각을 다 한 다음에 그걸 글로 옮긴다고 믿는다. 머리가 공장이고 글은 포장이라는 식으로. 그런데 실제로 해 보면 순서가 거꾸로다. 쓰는 행위 자체가 생각을 만든다. 왜냐하면 말이나 머릿속 중얼거림은 적당히 모호한 채로도 굴러가지만, 문장은 그걸 허락하지 않거든. 주어를 정해야 하고, 그 주어가 무엇을 했는지 동사를 골라야 하고, 앞 문장과 뒤 문장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지 네 눈앞에 까발려진다. 머릿속에서는 슬쩍 건너뛸 수 있던 비약이, 종이 위에서는 빈칸으로 남아 너를 노려본다. 그래서 글로 쓴다는 건, 자기 생각을 자기가 처음으로 정직하게 검사대에 올리는 일이다.

이걸 누가 처음 말했느냐를 따지면, 사실 쓰기로 생각한다는 깨달음은 글이라는 것이 생긴 이래로 줄곧 사람들 곁에 있었다. 다만 그걸 또렷한 격언으로 못 박은 사람들이 근대에 줄을 잇는다. 19세기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말하면서 생각이 점점 만들어지는 것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에서, 막막한 문제가 있으면 일단 아무에게나 입을 떼고 말을 시작하라고 했다. 시작할 때는 결론을 몰랐는데 문장을 밀고 나가다 보면 그 끝에서 답이 솟아난다는 거다. 영국 소설가 E. M. 포스터가 했다고 전해지는 한마디는 더 날카롭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그것을 말하기 전에는. 생각이 먼저고 표현이 나중이 아니라, 표현하는 도중에 생각이 생겨난다는 뒤집힌 진실이다.

이걸 가장 집요하게 도구로 벼린 사람을 하나 들자면 20세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의 노트와 계산 종이가 잔뜩 남아 있는데, 한 역사학자가 그 종이들을 보고 "당신 생각의 기록이 멋지군요"라고 하자 파인만이 발끈했다. 이건 기록이 아니라고. 종이 위에서 실제로 일어난 작업 그 자체라고. 생각은 머릿속에 있고 종이는 사본을 떠 둔 게 아니라, 종이에 쓰는 그 손놀림이 생각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는 거다. 그는 어려운 개념을 만나면 늘 백지에 처음부터 설명을 써 내려갔다. 자기가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쓰지 못하면, 그건 아직 자기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쓰다가 막히는 지점이 곧 이해가 비어 있는 지점이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게 디지털 시대다. 손글씨 시절엔 한번 쓴 문장을 고치기가 번거로워서, 사람들은 쓰기 전에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완성하려 들었다. 그런데 컴퓨터 글쓰기는 지우고 옮기고 끼워 넣는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글쓰기의 상위 틀 자체가 바뀌었다. 완성된 생각을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엉성한 초고를 일단 토해 내고 그걸 고쳐 가며 생각을 빚는 방식이 표준이 된 거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막막한 문제를 만나면 빈 문서를 열고 두서없이 떠오르는 걸 쏟아 낸 뒤, 그 덩어리를 깎아 가며 자기가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상대까지 생겼다. 네가 질문을 글로 또렷하게 적어야 기계가 답하는데, 그 질문을 적는 과정에서 너는 이미 네 문제의 절반을 스스로 정리하게 된다.

그러니 네가 머릿속이 뿌옇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르겠는 막막한 순간을 만나거든, 더 생각하려 애쓰며 천장만 보지 마라. 빈 종이나 빈 화면을 열고, 엉망이어도 좋으니 첫 문장부터 적어 내려가라. 글이 막히는 바로 그 자리가 네 생각이 비어 있는 자리다. 거기를 메우면, 그게 생각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