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과학·경험적 방법

가설연역법 (hypothetico-deductive)

먼저 그럴듯한 설명 하나를 가설로 세우고, 그 가설이 참이라면 반드시 따라 나올 구체적 예측을 논리로 뽑아낸 다음, 그 예측이 실제로 맞는지 실험과 관찰로 확인하는 방법. 가설은 관찰에서 저절로 솟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먼저 추측해 던지는 것이며, 그 추측의 운명은 그것이 낳은 예측이 현실의 시험을 통과하느냐로 갈린다.

너, 책상 위에 숫자 두 줄이 놓여 있다고 해보자. 같은 병원, 같은 도시, 산모가 아이를 낳는 똑같은 일을 하는 두 병동의 사망 기록이다. 한쪽은 백 명 중 열여덟 명이 산욕열로 죽어 나가고, 바로 옆 병동은 그 몇 분의 일밖에 죽지 않는다. 산모들은 이 차이를 본능으로 알아서, 죽음의 병동에 배정되면 무릎을 꿇고 다른 쪽으로 보내 달라 빌었다. 너라면 이 두 줄의 숫자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1840년대 빈의 한 종합병원,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젊은 의사가 바로 그 숫자를 앞에 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 이야기는, 답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차이를 그가 어떻게 한 겹씩 벗겨 갔는지에 관한 거다. 그리고 그 벗겨 가는 방식 자체가, 오늘 네가 배울 사고법의 가장 깨끗한 본보기다.

제멜바이스는 먼저 떠오르는 설명들을 하나씩 도마에 올렸다. 첫 번째 짐작. 죽음의 병동이 더 붐벼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런데 이 짐작이 맞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할 결과가 있다. 덜 붐비는 쪽이 덜 죽어야 한다. 그가 직접 세어 보니 정작 산모들이 몰려드는 쪽은 안전한 병동이었다. 짐작은 예측을 내놓았고, 예측이 사실과 어긋났으니 짐작은 버려졌다. 두 번째 짐작. 빈의 기후나 공기 탓이라면? 그렇다면 같은 하늘 아래 붙어 있는 두 병동이 똑같이 죽어야 한다. 그런데 둘은 달랐다. 또 버린다. 세 번째 짐작은 거의 미신에 가까웠다. 죽어 가는 산모에게 마지막 의식을 베풀러 오는 신부가 종을 울리며 병동을 가로질러 지나가는데, 그 음산한 행렬이 산모들을 공포에 질려 죽게 한다는 것이었다. 제멜바이스는 이것조차 진지하게 시험했다. 신부에게 길을 돌아 조용히 들어오게 하고 종을 치지 말게 했다. 사망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 버린다. 너 지금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가. 그는 그럴듯한 이야기 하나를 짓고, 그 이야기가 참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콕 집어 말한 다음,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어긋나면 미련 없이 버렸다. 이 한 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는 것 — 이게 가설연역법이다.

돌파구는 비극에서 왔다. 1847년, 그의 동료이자 부검을 가르치던 야코프 콜레치카가 학생의 칼에 손가락을 베인 뒤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그런데 그 시신을 살펴본 제멜바이스는 소름이 끼쳤다. 콜레치카의 몸속 상태가, 산욕열로 죽은 산모들의 그것과 판박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머리가 번뜩 추측 하나를 길어 올린다. 죽음의 병동을 맡은 건 부검실을 드나드는 의사와 학생들이었고, 안전한 병동을 맡은 건 시신을 만질 일이 없는 산파들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의사들의 손에 묻은 시체의 어떤 보이지 않는 입자가 산모의 몸으로 옮겨 가 산모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세균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다. 그래도 이 추측은 즉시 검증 가능한 날카로운 예측을 낳았다. 만약 그게 맞다면, 의사들이 산모를 보기 전에 그 입자를 손에서 박박 씻어 없애면 죽음이 줄어야 한다. 1847년 5월, 그는 모든 의사에게 염소를 푼 물에 손을 씻고서야 분만실에 들어가게 했다. 결과는 그 자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죽음의 병동 사망률이 그해 18퍼센트대에서 이듬해 1퍼센트대로 곤두박질쳤다. 머리가 던진 추측이 손이 행한 실험으로 증명된 순간이다.

이야기가 여기서 행복하게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진짜 긴장은 지금부터다. 제멜바이스는 동료 의사들에게 멸시당했다. 신사이자 학자인 우리의 손이 더럽다니, 그 손이 산모를 죽인다니 — 자존심 상한 의학계는 증거를 보고도 등을 돌렸다. 게다가 그는 왜 손을 씻으면 사람이 사는지 그 메커니즘을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입자의 정체를 몰랐으니까. 사람들은 그 빈틈을 물고 늘어졌다. 결국 그는 빈에서 밀려났고, 점점 격해지다 정신병원에 갇혀 1865년 마흔일곱에 쓸쓸히 죽었다. 그의 손 씻기가 옳았음이 온 세상에 받아들여진 건, 파스퇴르와 코흐가 세균을 눈앞에 들이밀고 난 한참 뒤였다. 여기서 너가 새겨야 할 게 있다. 그의 방법은 완벽히 옳았는데도, 시대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좋은 사고법이 곧 좋은 대접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런데 제멜바이스가 묵묵히 굴리던 이 바퀴에 이름과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들은 따로 있다. 같은 19세기, 영국에서 학문이란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두고 두 사람이 크게 부딪쳤다. 한쪽은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그는 사실을 부지런히 모아 쌓으면 거기서 법칙이 저절로 올라온다고 봤다. 다른 한쪽이 윌리엄 휴얼이라는, 케임브리지의 박학한 학자였다. 휴얼은 1840년에 펴낸 책에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법칙은 사실 더미에서 저절로 솟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 먼저 대담하게 발명하고 추측해 사실 위에 덮어씌우는 것이다, 라고. 그러고 나서 그 추측이 참인지는, 거기서 뽑아낸 예측들이 여러 갈래의 시험을 통과하는지로 가린다고 했다. 추측이 먼저, 검증이 나중. 사람들이 훗날 가설연역법이라 부르게 된 이 그림을 그는 또렷이 세웠다. 휴얼은 한술 더 떴다. 하나의 추측이 전혀 다른 영역의 사실들까지 한꺼번에 들어맞히며 묶어 낼 때, 그때 비로소 그 추측을 믿을 만하다고 했고, 이 현상에 '함께 뛰어오름'이라는 뜻으로 컨실리언스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 붙였다. 제멜바이스가 손으로 보여 준 것을, 휴얼은 머리로 정리해 둔 셈이다.

이 사고법은 강의실 밖에서 오늘도 가장 부지런히 돌아간다. 네가 매일 들여다보는 앱과 웹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면 안다. 그들은 '이 버튼을 파란색으로 바꾸면 사람들이 더 많이 누를 것이다' 같은 추측을 던지고, 그게 맞다면 따라야 할 숫자를 예측한 다음, 사용자를 두 무리로 갈라 한쪽엔 옛 화면을 다른 쪽엔 새 화면을 보여 주고 어느 쪽이 정말 더 눌렀는지를 잰다. 이른바 A/B 시험이라 부르는 이것이, 두 병동의 사망 기록을 비교하던 제멜바이스의 바퀴와 정확히 같은 물건이다. 추측하고, 예측을 뽑고, 갈라서 재고, 어긋나면 버린다. 거대한 인터넷 회사들이 하루에도 수천 건씩 이 바퀴를 돌려 제품을 다듬는다. 빈의 한 의사가 종이 위에서 손으로 굴리던 고리가, 지금은 수억 명의 클릭 위에서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너가 '이건 분명 이래서 그런 거야' 하는 그럴듯한 설명 하나를 손에 쥐었거든, 그 설명에 반해서 더 그러모으지 마라. 대신 차갑게 물어라. 이 설명이 정말 맞다면,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그 보여야 할 모습을 한 문장으로 콕 집어 말한 다음, 정말 그렇게 보이는지 직접 가서 재 보라. 어긋나면 미련 없이 버리고 다음 추측으로 넘어가라. 그렇게 한 겹씩 버려 가며 끝까지 살아남은 설명 하나가, 두 줄의 숫자 뒤에 숨은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