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미 추정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도 몇 단계의 합리적 어림셈만으로 어떤 양의 '자릿수(order of magnitude)'를 빠르게 가늠하는 추정법.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에서 왔으며, 크고 막막한 미지수를 그나마 짐작 가능한 작은 값들의 곱으로 쪼개는 것이 핵심이다.
20세기 물리학에 '교황'이라 불린 사람이 있다. 엔리코 페르미. 농담이 아니라 동료들이 진짜 그렇게 불렀다. 너무 안 틀려서,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라는 뜻이었다. 물리학자는 보통 둘로 갈린다. 칠판 앞에서 이론을 세우는 사람과, 실험실에서 기계를 만지는 사람. 양쪽 다 일류인 경우는 거의 없는데 페르미가 바로 그 거의 없는 경우였다. 그런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가장 좋은 창문이 하나 있다. 사막에서 종잇조각 한 줌으로 핵폭탄의 위력을 알아맞힌 사건이다.
1945년 7월 16일, 동트기 직전의 뉴멕시코 사막. 인류가 처음으로 핵폭탄을 터뜨리는 아침이었다. 그 폭발이 얼마나 강할지는, 천문학적인 돈과 수년의 세월을 부은 뒤에도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 과학자들이 16킬로미터 밖 참호에 엎드려 숨죽이던 그때, 페르미는 엉뚱하게도 수첩을 한 장 찢어 잘게 조각내고 있었다. 섬광이 터지고 한참 뒤 충격파가 밀려오는 순간, 그는 쥐고 있던 종잇조각을 머리 위에서 떨어뜨렸다. 종이들은 밀려온 바람에 발치에서 두어 걸음, 한 2.5미터쯤 뒤로 밀려나 떨어졌다. 그는 그 거리를 눈으로 가늠하고 수첩에 몇 줄을 끄적이더니 조용히 답을 말했다. 대략 1만 톤의 TNT. 나중에 정밀 계측기가 내놓은 공식 수치와, 종잇조각 한 줌의 어림이 같은 자릿수 안에서 만났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비밀은 그가 처음부터 '정확한 정답'을 깨끗이 포기한 데 있다. 페르미가 원한 건 소수점이 아니었다. 1천 톤이냐 1만 톤이냐 10만 톤이냐, 딱 그 자릿수 하나였다. 충격파가 종이를 민 거리와 자기까지의 거리만 알면 폭발 에너지의 '규모'는 거슬러 잡을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았다.
이건 그 사막에서만 부린 재주가 아니라 그의 평생 습관이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즐겨 던진 악명 높은 질문이 있다. 시카고에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이나 될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쪼갠다. 시카고 인구가 얼마, 그중 피아노 가진 집이 몇 분의 몇, 피아노는 몇 년에 한 번 조율하고, 조율사 한 명이 하루에 몇 대를 보고…. 조각마다 두세 배씩 틀려도, 곱해 가는 사이 위로 틀린 것과 아래로 틀린 것이 서로 깎여 최종 자릿수는 신기하게 맞아떨어진다. 모르는 큰 덩어리를, 그나마 짐작 가능한 작은 곱셈의 사슬로 갈아 끼우는 것 — 이게 그의 사고법이고, 그래서 후대가 이런 어림셈에 아예 '페르미 추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발명했다기보다, 그의 사고 습관에 세상이 이름을 헌정한 셈이다.
이 어림의 힘을 그는 장난이 아니라 역사에서 증명했다. 1942년 12월 2일, 시카고 대학 운동장 관중석 아래 버려진 스쿼시 코트에서, 페르미는 인류 최초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 세계 최초의 원자로였다. 그는 통제봉을 한 칸씩 빼면서 계수기가 딸깍이는 소리만으로 반응이 임계에 다가가는 걸 가늠했다. 그 순간에도 그의 무기는 정밀 계산이 아니라 훈련된 어림이었다. 성공을 알린 암호 전문은 이랬다. 이탈리아 항해사가 신대륙에 상륙했다. 그 항해사가 바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노벨상 수상자 페르미였다.
세월이 흘러 그의 어림셈은 하나의 교육 전통이 되었다. 너도 어디선가 들어 봤을 거다. 큰 기술 회사들이 입사 면접에서 "이 도시에 주유소가 몇 개나 있겠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이야기. 정답을 맞히라는 게 아니라, 모르는 양 앞에서 멈추지 않고 쪼개어 규모를 잡아내는 그 페르미식 근육을 보겠다는 거다. 자료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자료로도 일단 자릿수를 잡고 움직이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너가 '이건 데이터가 없어서 계산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듣거나,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만나거든, 페르미처럼 되물어라. 정확히는 몰라도, 이걸 무엇과 무엇의 곱으로 쪼개면 각 조각은 어림이라도 잡히지 않나. 완벽한 한 자리보다, 빠르게 잡은 대략의 자릿수가 결정의 팔 할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