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Baruch Spinoza)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 역량은 이미 주어져 있고, 꺼내는 일이 남아 있다.
암스테르담의 렌즈 세공사.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당하고, 죽을 때까지 렌즈를 갈며 『에티카』를 썼다. 신 즉 자연 — 세계 바깥에 설계자를 두지 않고, 하나의 실체가 안에서 스스로 전개된다고 봤다. 초월 없이 내재만으로 질서를 설명한 최초의 근대인.
코나투스는 각 존재가 제 존재를 지속하려는 힘이고, 정동(affectus)은 그 힘의 증감이다. 기쁨은 역량이 늘어나는 이행, 슬픔은 줄어드는 이행. 그래서 그의 윤리학은 선악의 심판이 아니라 역량의 회계다 — 이 만남이 나를 더 할 수 있게 만드는가, 덜 할 수 있게 만드는가. 그리고 저 유명한 문장: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아직 알지 못한다.
이 작업장과 닿는 지점 — capability overhang의 원형이 여기 있다. 모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아직 모르고, 역량은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꺼내야 하는 것이라는 이 사이트의 전제는 스피노자의 몸 문장과 같은 형태다. 도구와 레시피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역량의 증감으로 심사하는 감각도, 외부 설계자 없이 안에서 전개되는 질서를 신뢰하는 태도도 그에게서 온다.